불신지옥(2009)

대한민국의 종교는 썩어 있다. 아무리 독실한 교인이라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의 종교가 티없이 깨끗하다고는 하지 못할 테다. 한반도 땅덩어리에 자리한 여러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는 청렴에 있어 가장 불신받는 종교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다섯 개가 이 좁은 땅에 꾸역꾸역 들어 있다. 그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성전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난다. 명동이나 남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면 꼭 큼직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장한 목소리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이 보인다. 사람마다 가치판단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광신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아마도 여기서 제목을 따 온 것이 분명한 영화 [불신지옥]은 소진(심은경)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실종되면서부터 출발한다. 소진의 언니 희진(남상미)은 동생을 찾으러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데, 자매의 엄마(김보연)는 광신적인 기독교 신자다. 소진의 행방은 태환(류승룡)이란 고집불통 형사가 추적한다. 이쯤 되어도 영화가 한국의 교회에 가열찬 하이킥을 날리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막상 뚜껑을 열면 영화는 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 있어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바로 믿는 이(신자)의 문제다. 영화에서 주가 되는 종교는 둘이다. 기독교와 무속신앙이다. 무속신앙은 원래 민초들의 고단하고 핍박받는 삶에 뿌리를 박은 만큼 기복(祈福)적인 성격이 강하다. 영화는 기독교와 무속을 실상 동일한 위치에 놓는다. 한국 기독교의 기복교적인 실태를 힘껏 꼬집으면서 한편으로는 '불신지옥'이란 제목이 단지 기독교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당초 기대했던 비판의 망치는 파괴력이 덜해졌다. 심지어 제도권 교회를 피하려는 불안도 엿보인다. 그리하여 영화의 대립 구도는 기독교/비기독교가 아니라 신자/불신자의 구도다. 신자들이 천국(복)을 독점하려면 불신자들은 싸그리 지옥으로 보내야겠다. 불신자에게는 지옥 뿐이지! 불신지옥이야! 신자들이 천국을 독점하려는 욕망은 늘 짭짤한 장사가 된다. 대한민국은 그 장사를 여러 종교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신자와 불신자의 동선이 겹치는 궤도를 달린다. 희진의 지옥 같은 세상살이를 두고서도 "예수님이 있다면 분명 개새끼일 거야"와 "아직도 예수님께 믿음이 부족하구나" 둘 모두의 해석이 가능한 법이다. 신자에게는 학이 신이지만 불신자에게는 새에 불과하다. 그래서 [불신지옥]은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영화다. 광신 또한 불신처럼 현실의 것이니 말이다. 저 옛날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조차 죽음이 닥친 순간에는 예수를 부정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신자가 불신자가 되듯 불신자 또한 언제든 신자가 될 수 있는 현실에 살고 있다. 아무리 도도한 불신자라도 지옥으로 화한 현실에서 성전을 만들고 천국을 구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믿을 것을 갈구한다. 믿고 싶어 한다.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서 어두운 지하실 복도를 해메는 희진의 공포는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오버랩된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형사 태환의 질주는 여타 싸구려 추리물과는 수준이 다른 격이 있다. 현실을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용주. 무서운 신인 감독의 탄생이다.  
by 콘라드 | 2009/08/16 00:54 | 영화보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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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위래 at 2009/08/16 13:11
그냥저냥한 3류 공포영화 일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네요?
Commented by 카오스95 at 2009/08/17 22:36
이런 류는 프로파간다가 될 염려가 있어서... 특히 신인의 경우.
감상들이 보니까 테마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다지 성공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Commented by 넷실러 at 2009/08/26 04:37
프로파간다라고 보기엔 좀 파괴력이 약합니다.
어찌보면 오히려 그게 아쉬운 영화죠.
Commented by 넷실러 at 2009/08/26 04:39
다른 무엇보다도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라는 스타일이라서 좋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귀갑이 다리 박박긁는씬은 왜넣은지 영문을 모르겠어요-_- 차라리 기어!에 대한 담론이 조금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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