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멸망했다. 숯검댕이가 되어버렸다. 불지옥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잿빛 하늘과 황무지와 먼지가 남았다. 그리고 절망과 약탈과 폭력이 남았다. 소행성이 충돌한 것인지 핵전쟁이 일어났는지 까닭은 알 수 없다. 하여튼 세상은 멸망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걸어간다. 그들은 멸망한 세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다. 발을 바삐 움직이는 둘에게 목적지는 없다. 다만 살아남아 질기고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일이 유일한 목적이다. 폐허와 시체가 일상의 풍경처럼 널린 세상에서 아버지도 아들도 어쩔 줄을 모른다. 우리는 절대 사람을 먹지 않을 거야. 매카시 할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희망의 형태를 말살했다. 글에서 녹슨 쇠냄새가 난다. 이는 무미건조라는 익숙한 수사를 훌쩍 뛰어넘는다. [로드]에서 어떤 맛이든 우리가 바라는 맛을 경험하려면 차라리 쇠를 핥아 맛을 느껴보려 애쓰는 게 낫다. 자비라는 미덕을 폐기처분한 코엔 형제가 매카시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매카시 할아버지는 코엔 형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영상보다 글에서 상상력의 여지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읽는이는 희망을 상상할 수 없다. 어쩌면 세상이 멸망할 때 약해빠진 신도 함께 죽어버렸을지 몰라. 그래서 마침내 매카시가 말하는 구원의 방법은 강하게 머리를 친다. 뒤에서 맞은 것이 아니라 뻔히 눈뜨고 보며 맞은 격이다. 맛이 쌉쌀하지만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신이 죽은 세상에서는 희망을 구할 수 없는 것을. 아들이 말한다. 아빠랑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정말로 아들은 그렇게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켰고 끝내 지킬 테다. 희망은 그렇게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고야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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