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그대로다. [추격자]는 빠르다. 화면에서 쿵쿵 날뛰는 심장이 만져지고 후끈한 땀냄새가 끼치는 듯하다. 폭발을 거듭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엄청난 속도감이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또 야생마처럼 달린다. 달리는 놈은 엄중호(김윤석)만이 아니다. 영화 전체가 내내 헐떡이는 숨을 뱉으며 쌩쌩 내달리고 있다. 폭발하는 듯한 속도감은 영화 속 인물이 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가져다준다. 범인은 처음부터 밝혀져 꽁꽁 묶여 있지만 추격하는 대상은 지영민(하정우)의 몸뚱어리가 아니라 연쇄살인마의 악마적인 실체다. 도망가는 것도 몸뚱이가 아닌 실체다. 실체를 잡기 위해서 추격하는 것이다. 한국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여기서 공권력, 경찰은 호구다. 이들은 무기력하고 정체되어 있다. 온갖 절차와 권력투쟁에 목을 매 추격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연쇄살인범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모든 걸 다 털어놓는데 오히려 거기에 대처하지를 못한다. 여기서 연쇄살인범 지영민의 캐릭터가 대단하다. 여자 머리에 정(釘)을 망치로 때려넣는, 상식을 배신하고 무식하다못해 괴물같은 살해방식을 제쳐두고라도, 지영민은 순진한 얼굴과 싸늘한 웃음만으로 공권력을 조롱하며 악마로 군림한다. 너무나도 태연하고 여유를 잃지 않는 악마는 도무지 손이 닿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몸뚱이를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패도 진짜 실체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악마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세상을 비웃고 있다. 또 지영민을 추격하는 추격자 엄중호는 어떠한가? 엄중호는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며 여자들의 성(性)을 갈취하는 '쓰레기'다. 아파 죽겠다는 여자를 몸 팔러 나가라고 윽박지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다. 엄중호가 지영민을 추격하는 동기는 어떤 정의감이나 연민,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밥벌이 수단을 빼앗겨 빡탱이가 돌았기 때문이다. 씨발 놈아, 내 꺼야! 왜 맘대로 건드려? 엄중호는 자기 물건을 맘대로 훔쳐간 지영민을 두들겨 패서라도 되찾고 싶다. 하지만 동기는 그러했으나 추격이 진행될수록 엄중호의 이유는 또 다른 것이 있음이 드러난다. 지영민에게 많은 여자를 빼앗겼으나 유독 김미진에게 집착하는 데에는 그녀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라서라기보다는 유일하게 속죄의 열쇠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엄중호, 지영민 둘 다 나쁜 놈인데 엄중호는 개새끼 씹새끼 소리지르며 지영민을 두들겨 팬다는 게 우습다. 하지만 악질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성매매를 하는 엄중호는 물론 나쁜 놈이지만, 지영민은 엄중호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사악한 놈이다. 자기보다 더 강력한 악마와 전면적으로 마주한 엄중호는 그간 의식하지 못했던 죄를 어렴풋이 느낀다. 암세포처럼 달라붙은 죄를 다 없애지는 못해도 닿는 부분이라도 없애고픈 마음이 생긴다. 바로 자신이 김미진을 지영민의 아가리 속으로 내몰았고 딸아이는 졸지에 소녀가장이 되게 생겼다. 속죄하는 방법은 김미진을 구하고 지영민을 끝장내는 것 뿐이다. '나도 나쁜 놈이지만, 너는 더 나쁜 새끼야. 내가 꼭 죽여버릴거야.' 마치 처절한 자위행위와도 같다. 나보다 더 나쁜 놈을 잡아서 착한 놈이 되고 싶다는 치졸하지만 절박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스스로도 근원을 모르는 엄청난 분노의 형태로 나타난다. 둘이 한자리에 있는 공간, 둘이 한자리에 있는 장면은 적다. 골목길 언덕길 쫓고 쫓기는 것이 아니라, 엄중호는 죽어라 달리는데 지영민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한다. 하지만 [추격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중호와 지영민이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듯한 인상을 준다. 두 인물 사이 긴장이 팽팽하고 파괴적이다. 영락없는 야수들의 싸움이다. 엄중호는 추격하고, 지영민은 도망간다. 도망자는 추격자보다 훨씬 강하다. 과연 추격자는 도망자를 잡을 수 있을까? 삑삑 증기를 뿜어내고 뚜껑이 달칵거리며 금방이라도 물이 넘칠 것 같은 화면, 보는이는 눈을 떼기 힘들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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