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 혹은 'M군 사건'이라고 하는 희대의 여아 유괴 살인사건이 있었다. 스물일곱 살 청년이 4살에서 7살 가량의 여자아이 넷을 유괴하고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이름도 어쩐지 음침한 누쿠이 도쿠로는 이 사건을 동기로 삼아 [통곡]을 썼다. 거의 500장에 이르는 분량임에도 짧게 끊어서 화자 둘을 내세워 썰을 풀고 있다. 두 화자 중 하나는 경시청 수사 1과장이자 전도 유망한 엘리트인 사에키 과장이고, 다른 하나는 독한 상실감으로 신흥종교에 빠져드는 사나이 마쓰모토다. 짧게 거듭 토막낸 구성 탓에 상당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힌다. 구사하는 트릭은 요즘 한창 유행하는 것인데다 단순한 것이라 높이 치기 어렵지만, 나는 [통곡]의 진수는 트릭이라기보다 탐구라고 본다. 심리묘사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누쿠이 도쿠로는 인간의 파멸을 성실하게 탐구하고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적인 색깔을 칠하고 있음에도 목구멍과 똥구멍을 죄는 음울한 힘이 대단하다. 유난히 유괴 살인 문제에 천착하는 열도의 추리소설가 누쿠이 도쿠로가 품은 거대한 절망감이 슬쩍 비친다. 있는 힘껏 노력했으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악(惡)에 맞서면 모든 언어 표현이 모두 힘을 잃는다. 표지 뒷면에는 "인간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통곡한다"는 허세 엿보이는 문구가 있다. 허나 [통곡]의 맨 마지막 한 마디는 망치로 심장을 강하게 내리치는 듯 고통스럽다. 다 읽고 나서도 고통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를 읽고 있다. 어느덧 2권째에 접어들어 반 정도를 남겨두었다. 마이니치 신문의 호들갑에는 실소가 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양반이 그간의 공백을 충분히 메우는 글을 써냈다 싶다. 고등학교 때 [어둠의 저편]을 읽고 어찌나 실망했는지(책값을 생각하니 실망보다 절망이었다) 다시는 하루키를 읽지 않으리라 맹세했었다. 허나 역시 다시금 집어든 걸 보면 하루키적 관성이란 것이 몸에 체화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루키를 읽기 시작한 지 대략 팔 년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으레 그렇듯이 나도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를 처음 만났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하루키를 두고 이른바 중2병 작가라고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많은데 아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루키와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때는 여자친구와 지리멸렬하게 헤어진 중2 때였다. 그럼 중2병을 앓았던 것인지 무언인지 하여튼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장을 덮은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는 와타나베처럼, 그렇게 멍청해져서 가슴에 뻥 뚫린 구멍으로 휑하니 드나드는 바람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루키의 책을 열댓 권 정도 사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편은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고,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대하여]다.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는 터프한 사내아이가 되고 싶어 열심히 운동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 중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정말이지 하루키는 혼곤한 기분에 어울린다. 속세를 잊고 그만 까무룩 잠들고만 싶을 때 하루키만한 마취제가 없다. 지독한 무기질적 관조. 그렇다고 대충하는 법도 없이 무척 꼼꼼한 하루키식 화법. 그러니까 페니스가 어쩌구 바기나가 어쩌구, 자지가 어쩌구 보지가 어쩌구 해도 결국 내 아랫도리는 근엄하게 늘어져 미동도 없다. 야설 대용으로 쓴다고 하루키를 집어든 소년들이 실망하는 꼴을 많이 봤다. 꼴려라 꼴려라 기도하다 끝내 실패한 누군가가, 혹시 하루키는 고자가 아닐까? 고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글을 쓴단 말인가! 하고 퍽 잔인한 추측을 하는 걸 듣기도 했다. 그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하여간 하루키의 문장을 읽으면 회색깔 세상에 나도 물들어 함께 잠겨들지 싶다. 돌이켜 짚어보면 왕년의 문학소년이었던 나도 많이 변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설 참 많이도 읽었는데 말이다. 그만 좀 읽고 공부 좀 하라고 타박 많이 당했다. 까뮈니 보르헤스니 뿌쉬낀이니 찾아다닐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제 하루키나 겨우 읽어내고 있다. 많은 작가들을 잊(잃)어버렸다. 아무래도 세월의 썰물이 빠져나가고 보면 기억의 백사장에는 가장 무거운 것들만 남아있나 보다. 그러니 하루키는 내 짐작보다 무거운 것이었음이 확실하다. 오늘은 날이 밝을 때까지 [1Q84]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야겠다. 문득 싱싱한 오이를 생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먹고 싶다. ![]() 대한민국의 종교는 썩어 있다. 아무리 독실한 교인이라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의 종교가 티없이 깨끗하다고는 하지 못할 테다. 한반도 땅덩어리에 자리한 여러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는 청렴에 있어 가장 불신받는 종교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다섯 개가 이 좁은 땅에 꾸역꾸역 들어 있다. 그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성전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난다. 명동이나 남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면 꼭 큼직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장한 목소리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이 보인다. 사람마다 가치판단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광신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아마도 여기서 제목을 따 온 것이 분명한 영화 [불신지옥]은 소진(심은경)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실종되면서부터 출발한다. 소진의 언니 희진(남상미)은 동생을 찾으러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데, 자매의 엄마(김보연)는 광신적인 기독교 신자다. 소진의 행방은 태환(류승룡)이란 고집불통 형사가 추적한다. 이쯤 되어도 영화가 한국의 교회에 가열찬 하이킥을 날리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막상 뚜껑을 열면 영화는 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 있어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바로 믿는 이(신자)의 문제다. 영화에서 주가 되는 종교는 둘이다. 기독교와 무속신앙이다. 무속신앙은 원래 민초들의 고단하고 핍박받는 삶에 뿌리를 박은 만큼 기복(祈福)적인 성격이 강하다. 영화는 기독교와 무속을 실상 동일한 위치에 놓는다. 한국 기독교의 기복교적인 실태를 힘껏 꼬집으면서 한편으로는 '불신지옥'이란 제목이 단지 기독교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당초 기대했던 비판의 망치는 파괴력이 덜해졌다. 심지어 제도권 교회를 피하려는 불안도 엿보인다. 그리하여 영화의 대립 구도는 기독교/비기독교가 아니라 신자/불신자의 구도다. 신자들이 천국(복)을 독점하려면 불신자들은 싸그리 지옥으로 보내야겠다. 불신자에게는 지옥 뿐이지! 불신지옥이야! 신자들이 천국을 독점하려는 욕망은 늘 짭짤한 장사가 된다. 대한민국은 그 장사를 여러 종교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신자와 불신자의 동선이 겹치는 궤도를 달린다. 희진의 지옥 같은 세상살이를 두고서도 "예수님이 있다면 분명 개새끼일 거야"와 "아직도 예수님께 믿음이 부족하구나" 둘 모두의 해석이 가능한 법이다. 신자에게는 학이 신이지만 불신자에게는 새에 불과하다. 그래서 [불신지옥]은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영화다. 광신 또한 불신처럼 현실의 것이니 말이다. 저 옛날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조차 죽음이 닥친 순간에는 예수를 부정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신자가 불신자가 되듯 불신자 또한 언제든 신자가 될 수 있는 현실에 살고 있다. 아무리 도도한 불신자라도 지옥으로 화한 현실에서 성전을 만들고 천국을 구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믿을 것을 갈구한다. 믿고 싶어 한다.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서 어두운 지하실 복도를 해메는 희진의 공포는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오버랩된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형사 태환의 질주는 여타 싸구려 추리물과는 수준이 다른 격이 있다. 현실을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용주. 무서운 신인 감독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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