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왕가위가 좋다

정말 이제 겨울인가 보다. 몹시 춥다. 엉엉.
by 콘라드 | 2009/12/02 03:26 | 말하기 | 트랙백 | 덧글(2)
스틸 라이프(三峽好人, 2006)

올해 초에 한 번, 오늘 두 번째 보았다. 명불허전이다. 나는 중국의 젊은 거장 지아장커의 카메라를 통해 인민과 마주하는 태도를 배운다. 16년 전 떠난 마누라와 딸을 찾는 사나이 산밍이나, 2년째 별거중인 남편을 찾는 여인 셴홍이나 모두 산샤로 접어든다. 지아장커는 산샤의 풍경에서 중국의 급변을 읽는다. 산샤는 중국에서 가장 급격한 공업화가 진행되는 곳이다. 아름다운 산샤 강변의 이면에는 중국 인민의 아픔이 생생하다. 2천년의 역사가 2년 만에 물에 잠기는 산샤에서는 인간이 어제를 돌아볼 틈이 없다. 어제를 돌아보지 않음은 생존의 방법이다. 때로는 국가의 변화가 개인의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어제에서 오늘의 변화에 깜짝 놀라 눈을 비벼야 하고 오늘에서 내일의 변화는 더하다. 노동의 공기는 지독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산샤에서 철거되고 침수되는 것은 바로 인민의 삶이다. 잡스러운 기교를 쓰지 않으면서도 능동적으로 카메라를 비추는 지아장커의 태도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딱 한 발짝을 헛딛어도 천길 아래로 추락하는 외줄 위에서 중국인은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 사회주의 인민들에게 바치는 지아장커의 연서는 사나이 가슴을 쨍하게 울리고야 말았다.
by 콘라드 | 2009/12/02 01:03 | 영화보기 | 트랙백 | 덧글(0)
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Levitt

보면 볼수록 멋진 사나이.
by 콘라드 | 2009/11/29 02:05 | 말하기 | 트랙백 | 덧글(0)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 破, 2009)


용산으로 갔다. 러시아워 시간대라 전철 안이 몹시 혼잡하였다. 숨이 막혀 골이 아파 끙끙대며 용산에 당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게 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는 내가 극장에서 보는 첫번째 애니메이션이었다. 나의 유년시절을 지배한 만화가 딱 둘이 있는데 하나는 '은하철도 999'이고 다른 하나가 '에반게리온'이었다. 나는 아직 초딩이 아니라 국딩이었던 시절, 아직 심마니와 하이텔이 살아있던 시절, 조악한 40메가바이트짜리 엠피이쥐 파일로 에반게리온을 접했고 해적판 비디오를 빌려보며 갈증을 달랬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당시 단짝이었던 동무 탓이었다. 그 단짝 동무가 "죽이는 거 보여준다"면서 보여준 물건에 나는 완전히 매혹되었고 서너 시간 모뎀을 돌려야 겨우 얻을 수 있는 20여분의 영상을 밤새워 복기하게 되었다. 에바에 환장하던 시절에서 10년이 넘도록 세월이 흐른 지금, 신극장판으로 거듭난 에반게리온을 보는 나의 심정은 복잡하다.

일단 [파]는 글자 그대로 오리지널을 몽땅 파괴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먼저 [서]를 보고 역시나 에반게리온이 아니라 사골게리온이라고 비아냥거렸다면 얼른 그런 성급한 판단을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 내는 게 좋겠다. 새로운 파일럿 마리 일러스트리어스가 '낙하산 타고' 등장한 일은 제쳐두고 기존의 파일럿 모두가 아예 새로 태어났다고 보는 게 옳다. 이카리 신지가 더는 히키코모리 냄새 풀풀 나는 소심남이 아니다. 조금 멋있기까지 하다. 아야나미 레이의 새로운 면모는 골수 레이빠들에게 공황에 가까운 경악과 행복을 안겨 줄 것이다. 기실 레이 때문에 극장 여기저기서 헉, 놀라는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소류가 아니라 시키나미가 된 아스카는 이름이 바뀌면서 자의식 과잉 상태에서 탈출한 듯싶다. 나기사 카오루는 중얼거릴 때마다 핵폭탄급 떡밥을 투하하고 있다. 이야기를 새로 쓰면서 우울하고 싸늘했던 오리지널 에반게리온보다 전반적으로 정서의 톤이 훨씬 밝아졌다. 오리지널 26편에서 사람들을 멍 때리게 했었던 신지의 사이코드라마는 아마 없을 모양이다.

허나 에반게리온의 세계가 아예 엎어져 세기말적 공간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외려 원작의 6화 정도 분량을 압축 편집하며 조금 방만했던 [서]와는 달리, 이번 [파]는 거의 7화에서 19화에 이르는 분량을 폭력적일 만큼 단숨에 압축해 버리더니 벌써부터 "그리하여 세계는 멸망했습니다" 불쑥 선언할 징후를 보이고 있다. 뜻밖의 서사를 헤 벌리고 따라가다가 끝내 엄청난 결말을 벌벌 떨며 목도하니 감히 다음을 예측하기 무서운 마음이 든다. 그러니 [파]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오리지널과 다른 길을 가는 분수령이라고 봐야 하겠다. 이제 원작과 같은 장면이란 없다시피 하다. 아무리 오리지널을 열심히 복습하여 완전무장하고 뛰어든 자라도 당최 알아듣지 못할 말이 자꾸 나옴에 낭패감을 느낄 테다. 본래 에반게리온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혹자는 안노 히데아키가 친절해졌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이미 풀기 어려운 난제가 과포화 상태에 있다. 아무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는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제목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전혀 문외한이 보기에 에반게리온은 괜히 복잡한 이야기일 법하다. 마땅찮아 보일 수 있다. 그래도 뼈를 쪽쪽 빨 것이 아니라면 살만 발라먹어도 그 맛은 일품이다. 나는 러닝타임 내내 [파]가 구사하는 컴퓨터 그래픽의 경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편 [서]에서 거대 전자포로 사도를 격추하는 '야시마 작전'은 대단한 볼거리였다. 허나 [파]에서 보여주는 역동적인 전투 장면은 야시마 작전의 수준을 훌쩍 초월하는 것들이 허다하다. 일본의 씨쥐 기술은 작정하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씨쥐임을 모를 수준에 이르렀고,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불가능한, 다른 말로 오로지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표현들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을 의심하게 된다. 화면에 압도당하는 경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영점 일초를 다투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파워풀한 명장면들은 가능하다면 각막에 저장해서 계속 돌려보고 싶을 정도다. [파]를 본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첨단을 보는 것이다. 다음편 [Q]를 기다리며 나는 행복한 공황 상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분명 환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by 콘라드 | 2009/11/26 16:50 | 영화보기 | 트랙백 | 덧글(4)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19)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19)]은 다소간의 견해 차이는 있으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시초 격이라는 데에 대다수가 동의한다. 원래 프리츠 랑이 감독을 맡기로 했으나 각본을 보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울 듯하다ㅋ"하며 거절하였고 감독 자리는 로베르트 비네에게 돌아갔다. 한 사나이의 불안한 독백으로 시작되어 칼리가리 박사의 비밀을 추적하는 이 영화는 독일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남아 있다.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주관적 감성으로 화면을 표현하여 기기묘묘한 무대 장치와 조명이 불길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리들은 우스꽝스럽게 높은 의자에 앉아 있으며, 건물들은 균형과 모양이 어긋장이 나 있고, 그림자는 배경 세트에 그려져 있는데 배우들은 과장된 몸짓으로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결국 연쇄살인 소동이 벌어지는 공간은 누가 봐도 스튜디오 세트임이 분명하므로 관객은 영화를 각자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는 충격적이고 모호한 결말을 포함하여 인간의 주관과 감정을 중시하는 표현주의 영화의 진수라고 할 만하다. 진정한 고전은 세월의 세례를 받아도 여전히 고전이며 그 빛이 바래지 않는다. 9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칼리가리 박사 이야기는 가장 으스스한 호러 영화로 꼽히고 있으며 몽유병적 화면의 매력은 자못 환상적인 것이다. 세계 1차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이 시달리고 있던 우울증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by 콘라드 | 2009/11/19 17:36 | 영화보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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