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반점 짬뽕

고담에서 만난 전설의 짬뽕
by 콘라드 | 2010/09/19 15:08 | 말하기 | 트랙백 | 덧글(2)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테트로(Tetro, 2009)]: 코폴라식 콩가루 집안 이야기. 알고 복기하면 대단히 간단한 이야기지만 암호로 쓴 테드로의 원고처럼 단숨에 내막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결말에서 밝혀지는 형제의 비밀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내 옆자리에 않은 아저씨는 순간 헉 소리를 냈다. 명암을 능숙하게 이용하는 흑백 화면의 질감이 매혹적이다. 플래시백은 컬러 화면으로 써서 현재/과거의 명확한 대비를 만들었다. 컬러 영화의 시대에서 흑백 화면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총천연색 세상에서도 흑백 화면으로 찍어야 하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중간에 맥북 나오는 장면만 좀 잘라내고 싶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발할라 라이징(Valhalla Rising, 2009)]: 제목의 발할라는 반어법인가? 지프에서 올해 최고의 선택이라고 설레발을 치길래 어떤지 확인해보려 했다. 짱돌로 두개골을 부수고 뇌수가 팍 튀는 장면에서 예아, 하며 불끈 주먹을 쥐었으나 영화는 매우 정적이다. 고어의 수준도 그리 강도가 센 편이 아니라 적잖은 실망을 했다. 보여주려면 다 보여줄 것이지 보여줄 듯 말 듯 하면서 카메라는 왜 돌려. 십자군이 야만인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려다 지옥에 도달함은 글쎄. 아귀레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베르너 헤어조크가 만든 괴물 아귀레의 위엄을 경험한 나에게 발할라의 기합은 맥아리가 없어 보였다.

반종 피산다나쿤, 파윈 푸리킷판야, 송요스 수그마카난, 팍풍 웡품, 피수테 풀보랄락스, [포비아2(5แพร่ง)]: 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예 감독 다섯이 만든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공포영화다. 역시 GTH의 기분 좋은 삘이 적중했다. 아마도 올해 전주에서 가장 커다란 박수와 환호를 받은 영화가 아닐까 한다. 단편들 중 특히 세번째 [배낭여행자]와 다섯번째 [인 디 엔드]가 좋았다. [배낭여행자]는 미니멀하지만 빠르고 강력한 좀비영화다. 토다 에리카도 나오는데 별로 안 예쁘게 나오더라. [인 디 엔드]는 정말이지 최고 수준의 코미디 호러다. 영화 촬영장의 생리를 잘 이해하는 연출이 재치있고 능글맞다. 빵빵 터지는 웃음 가운데서도 옛날에 연출한 장편 [셔터]를 언급하는 위풍당당함을 과시한다. 이때 극장의 분위기는 마치 콘서트장처럼 열광의 도가니였다. 영화가 끝나자 폭풍 같은 박수와 환호가 1분이 넘게 전북대 회관을 가득 메웠다. 

조지 로메로, [서바이벌 오브 데드(Survival Of The Dead, 2009)]: 요즘 영화들에서 좀비가 경주선수처럼 후다다닥 달리는 세태를 로메로 감독은 자기 영화에서 점잖게 타이른 바 있었다. 죽어서 근육도 경직되고 살도 부패하는 좀비가 어떻게 그리 달리냐고. 이처럼 오늘날 좀비의 원형을 만든 거장 로메로에게는 원칙들이 있었다. 하지만 데드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그런 원칙들도 조금씩 흔들리는 모양이다. 좀비가 어찌 말을 타냐고. 알다시피 로메로의 좀비들은 학습을 한다. 이번에는 희생자가 생전의 습관을 좀비가 되고도 반복한다. 억압된 것의 귀환을 표현하는 방법이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실은 이제 로메로의 오락적인 감각은 거의 죽지 않았나 싶다. 웨스턴과 짬뽕시킨 문법은 어색하기만 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졸지 않고 이 영화를 버틴 힘은 오로지 거장에 대한 존경이었다.

서세진, [저 달이 차기 전에(2009)]: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옥쇄파업 77일을 내부에서 담은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있을 곳으로 공장의 '내부'를 택한 만큼, 처음부터 노동자 계급 '내부' 입장에서 풀어간다. 이성보다 정념에 호소하며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아는 것, 증오해야 할 것을 증오할 줄 아는 것을 알리는 다큐다. 이성보다 정념에 호소함은 자연스럽고 올바르다. 통계나 수치 따위의 이성은 자본주의의 야만이 표출된 불가해한 현실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댓바람에 날아온 해고통지 앞에서 무슨 객관과 보편이 소용이 있는가. 서세진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한쪽 입장에서, 노동자의 일그러진 얼굴과 눈물로 다큐를 만들었다. 이것이 올바른 태도다. 감히 객관과 보편을 함부로 말하며 주접을 떨지 말라. 쌍용자동차를 이야기할 때 철저한 편향과 아집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우스만 셈벤, [군신 에미타이(Emitai, 1971)]: 필름이 데미지를 많이 입어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메가박스에서 본 걸로 기억하는데 너무 덥고 지루해서 조금 잤다. 잤다 깼다 대략 30분 정도 내용을 놓친 것 같은데 그래도 별 상관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폭압에 시달리는 식민지 부족을 그리는데 별 다르지 않은 내용이 계속 반복되어 짜증이 상당했다. 극영화지만 음악도 없고 대단히 정적이라 다큐멘터리라고 착각할 만하다. 거기다 안 그래도 극장이 더운데 화면에서 열대의 열기와 습기가 뿜어지는 것만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우스만 셈벤은 아프리카 영화계를 일구어낸 거장이라지만 그 진가를 경험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다. 우스만 셈벤도 쿨쿨 자는 관객 앞에서는 심형래와 그리 다르지 않은 법이다. 오로지 인상에 남은 것은 부족이 신령들을 초혼하며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이었다. 신령한테 손가락질하며 따지고 드는 모습과 서너 옥타브를 훌쩍 오르내리는 고함 소리가 놀라웠다.

카타야마 카즈요시, [가시나무 왕(いばらの王, 2009)]: 고등학교 때 만화책을 먼저 접한지라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 그나마 막걸리에 대취해서 중간에 30분 정도는 잤다. 영상으로 보면 무언가 다른 맛이 있을 줄 알았지만 만화책이 더 낫더라. 그냥 만화책을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만 만화책은 다섯 권짜리로 알고 있는데 그걸 두 시간으로 압축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인포덤프 현상이 좀 생긴 모양이다. 나는 만화책을 봐서인지 뇌내보정이 됐지만 나랑 같이 영화를 본 추씨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아니 뭐 이런 씨발 같은 것이, 하고 분개하며 엔딩 크레딧도 기다리지 않고 극장을 나가 버렸다.

야닉 다한, 벤자민 로셰, [라 오르드(La Horde, 2009)]: 경찰들이 복수하러 깡패들의 은신처로 쳐들어간다. 그런데 느와르가 어느 순간 좀비영화로 변신한다. 화끈한 패기가 넘치는 프랑스산 영화.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날렵하게 시선을 전환하는 카메라 터치와 귀청을 뻥뻥 때리는 묵직한 음향이 멋진 액션씬을 우려냈다. 어두운 화면과 거친 터치가 몹시 야성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주차장에서 무지하게 몰려든 좀비떼를 총과 칼을 꼬나잡고 홀로 맞서는 장면은 압권이다. 열과 성의를 다하여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려는 각오가 엿보인다.

오바야시 노부히코, [하우스(ハウス, 1977)]: 컬트. 진짜 컬트. 나도 컬트영화를 봤다면 많이 본 사람인데 이건 첫손에 꼽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상식을 거부하는 편집과 병적으로 화사한 분위기 매드 페인팅으로 장식된 합성화면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귀를 고문하는 하이톤의 피아노 소리까지. 고정관념을 박살내는 편집과 연출에 박수를 치던 관객들도 나중 가서는 어안이 벙벙해하고 끝내는 피곤해하는 분위기로. 막 만든 고기는 막고기라고 하고 막 만든 국수는 막국수라고 하니 이런 영화의 장르는 막영화라고 해야 할까. 성의 없이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표현 가능한 모든 만화적 감각을 구겨넣은 판타지로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추씨는 영화 만들라고 돈을 대준 제작사가 신기하다고 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츠지모토 노리아키, [빨치산 전사(パルチザン前史, 1969)]: 교토대학교의 무당파 전공투였던 다키타 오사무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일본 학생운동의 시대. 흔한 나레이션 한마디 없이 가두투쟁과 훈련 과정, 토론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지독한 다큐멘터리였다. 전공투 역사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정말이지 불가항력. 거의 내내 쿨쿨 잤다.
by 콘라드 | 2010/05/03 23:50 | 영화보기 | 트랙백 | 덧글(2)
목이 메일 만큼 아름다운 숏
Charles Chaplin, [City Lights, 1931]

by 콘라드 | 2010/04/11 21:19 | 말하기 | 트랙백 | 덧글(3)
경계도시2(2009)

오늘 홍대 상상마당에서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를 봤다. 객석이 꽉 찼다. 나는 송두율 교수가 아버지의 묘를 참배할 때, 그리고 사실상의 전향 선언을 할 때 이렇게 두 번 울었다. 특히 두 번째 울음은 참기 힘들었다. 평생을 지켜온 경계인이라는 양심이 쓰레기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을 때, 그리고 마침내 야만에 굴복해야 했을 때 송두율의 영혼은 산산조각났을 것이다. 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할 전부가 무너지는 아픔을 가늠하다 나는 울었다. 그가 북한 노동당원이든 아니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 개인의 양심을 지켜줄 준비가 안 된 나라에서 국가란 아무런 자랑이 아니다. 홍형숙 감독 말이 지금까지 고작 1500명 관객 동원이라고 했다. 아무리 인디스페이스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수치다. 송두율을 기억하는 이들은 필히 봐야 할 것이고, 송두율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 역시 [경계도시2]를 봐야 한다. 송두율에게 동의하든 아니든 송두율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과 성찰과 반성이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만들기에.
by 콘라드 | 2010/03/22 00:48 | 영화보기 | 트랙백 | 덧글(2)
트위터

스마트폰도 없는 내가 트위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들하더니 팔로가 늘어나자 좀 재미있다.
트위터를 위해 일부러 휴대전화를 새로 살 생각은 없다. 스마트폰은 아직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

http://twtkr.com/riverrun88

많은 팔로우 부탁드린다.
by 콘라드 | 2010/02/20 19:48 | 말하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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